'중국 여행 자제하세요'…한국 정착 탈북민들이 '주의 문자' 받는 이유는?

중국의 한 공항 출입국 심사대에서 외국인 여행객이 입국심사를 받고 있다
사진 설명, 중국의 한 공항 출입국 심사대에서 외국인 여행객이 입국심사를 받고 있다
    • 기자, 리차드 김
    • 기자, BBC 코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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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여행을 준비 중이던 탈북민 정모 씨(30대·여)는 최근 신변보호 담당 경찰관에게서 한 통의 문자를 받은 뒤 여행 계획을 변경했다.

문자에는 "중국으로 출국하거나 중국을 경유하는 탈북민들이 입국을 거부당하거나 추방되고, 중국 공안에 체포·구류되는 사례가 지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중국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자제하거나 다른 곳으로 여행지를 변경하고, 이미 일정이 잡혀 있다면 항공권 등 여행 정보를 담당 경찰관에게 알려달라"는 당부도 있었다.

정 씨는 BBC에 "이 문자를 받은 뒤 중국 여행을 취소하고 대신 일본 여행으로 계획을 바꿨다"고 밝혔다.

BBC 취재 결과 한국에서 경찰의 신변보호를 받고 있는 탈북민 대부분이 이 같은 중국 여행 주의 안내를 받은 것으로 확인됐다.

올해 8월 말 기준 경찰의 신변보호 대상 탈북민은 2만401명으로, 국내 거주 북한이탈주민의 64.7%에 달한다.

탈북민에 대한 신변보호 기간은 거주지 전입 후 5년 범위에서 정해지고, 이후에도 본인 의사와 신변보호 필요성 등을 고려해 연장될 수 있다.

대한민국 국적과 여권을 가진 탈북민들이 이 같은 '중국 여행 주의' 문자를 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일선 경찰서의 신변보호 담당 경찰관이 탈북민들에게 보낸 중국 여행 주의 안내 문자. 중국에서 입국 거부나 체포·구류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여행 자제를 권유하고 있다
사진 설명, 일선 경찰서의 신변보호 담당 경찰관이 탈북민들에게 보낸 중국 여행 주의 안내 문자. 중국에서 입국 거부나 체포·구류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며 여행 자제를 권유하고 있다

중국 여행 자제 권고, 왜 나왔나

BBC가 확보한 경찰의 안내 문자에는 최근 중국의 한시적 비자 면제 정책 시행과 관련해 출입국 심사가 강화됐다는 설명이 담겨 있다.

특히 단속된 탈북민 가운데 상당수가 과거 중국에서 위조 여권을 사용했거나 중국 호구를 보유했던 경험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현지에서 체포나 구금 등 문제가 발생할 경우 담당 경찰관에게 즉시 알리고 대한민국의 영사 조력을 요청하라는 안내도 함께 전달됐다.

한 신변보호 담당 경찰관이 탈북민에게 보낸 문자. 중국에서 체포·구금될 경우 영사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국제협약 내용이 담겼다
사진 설명, 한 신변보호 담당 경찰관이 탈북민에게 보낸 문자. 중국에서 체포·구금될 경우 영사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국제협약 내용이 담겼다

탈북자동지회 서재평 회장도 지난여름 신변보호 담당 경찰관으로부터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담당 경찰관은 서 회장에게 중국 방문 계획이 있는지를 묻고, 중국을 방문하게 될 경우 각별히 주의해달라고 당부했다.

이 같은 주의 안내는 탈북민 사회에서도 빠르게 공유됐다. 서 회장은 탈북민 수십 명이 참여하는 단체 대화방에서 경찰의 중국 여행 주의 안내를 비롯해 실제 중국 여행 경험과 입국심사 관련 정보가 오가고 있다고 말했다.

탈북민들에게 이 문자를 보낸 일선 경찰서의 한 신변보호 담당관은 BBC에 "경찰청 지시에 따라 관내 탈북민들의 신변 안전을 위해 중국 여행 주의 안내를 전달했다"며 "만일의 체포·구금 상황에 대비해 영사조력을 받을 권리를 규정한 국제협약 내용도 함께 보냈다"고 말했다.

경찰청 관계자는 BBC에 "한국 외교부의 협조 요청에 따라 탈북민 신변보호 담당자들을 통해 관련 내용을 안내했다"고 밝혔다. 중국 공항에서 탈북민 단속 사례가 반복되고 있어 외교부가 중국 여행 주의와 영사조력 권리를 함께 안내해달라고 요청했다는 것이다.

다만 경찰청은 실제 몇 명의 북한이탈주민이 중국에서 입국을 거부당하거나 체포 및 구금됐는지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북한이탈주민이 해외로 출국할 때 신변보호 담당 경찰관에게 의무적으로 신고하는 제도가 아니기 때문이다.

가수로 활동 중인 김소연 씨는 지난해 가을 중국 칭다오공항 입국심사에서 과거 중국 거주와 호적 보유 여부를 묻는 추가 질문을 받았다고 말했다
사진 설명, 가수로 활동 중인 김소연 씨는 지난해 가을 중국 칭다오공항 입국심사에서 과거 중국 거주와 호적 보유 여부를 묻는 추가 질문을 받았다고 말했다

'입국심사서 나온 뜻밖의 질문'

정부 차원의 주의 안내가 나오기 전에도 한국 국적 탈북민이 중국 입국 과정에서 과거 중국 체류 이력과 관련한 추가 확인을 받은 사례가 있었다.

한국에서 가수로 활동 중인 김소연 씨가 그중 한 명이다.

소연 씨는 BBC에 지난해 가을 통역 일정으로 중국 칭다오를 찾았다가 공항 입국심사에서 예상하지 못한 질문을 받았다고 회상했다.

입국심사 과정에서 지문을 찍은 뒤 심사관은 모니터와 소연 씨의 얼굴을 번갈아 한참 들여다봤다고 한다. 곧 질문이 이어졌다.

"심사관은 저에게 대뜸 '중국에서 살았던 적이 있느냐, 중국 호적이 있었느냐'고 물어봤어요."

소연 씨는 북한을 탈출한 뒤 중국에 머물던 시절 실제 중국 호적을 가진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를 인정하면 신변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생각에 그런 적이 없다고 답했다.

소연 씨가 중국어로 대답하자 심사관은 중국어를 어떻게 그렇게 잘하느냐고 다시 물었다. 한국에서 배웠다고 답했지만 질문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심사관은 종이와 펜을 건네며 한자를 직접 써보라고 했다. 소연 씨는 자신의 필체까지 과거 기록과 대조하려 한 것으로 느꼈다고 말했다.

"아는 글자를 써보라고 해서 일부러 쓰는 순서를 완전히 다르게 했어요."

한참 후 심사관의 추가 질문과 가방 검색을 받은 뒤 소연 씨는 결국 입국을 허가받았다.

소연 씨는 지문을 찍은 직후 중국 거주와 호적 보유 여부까지 물어본 것을 두고, 중국 당국이 자신의 과거 기록을 이미 파악하고 있었다는 의심이 들었다고 말했다.

소연 씨는 이후 중국을 다시 방문하지 않았다.

중국 산둥성 칭다오의 출입국 심사장. 칭다오공항 입국 과정에서 추가 확인을 받았다는 탈북민들의 증언이 나왔다
사진 설명, 중국 산둥성 칭다오의 출입국 심사장. 칭다오공항 입국 과정에서 추가 확인을 받았다는 탈북민들의 증언이 나왔다

중국은 어떻게 탈북민 신원 확인할까

대한민국 여권을 들고 중국에 입국하는 사람의 과거 북한 탈출 및 중국 체류 이력을 중국 당국은 어떻게 확인하는 것일까.

과거에는 주민등록번호 자체가 탈북민의 신원을 드러내는 단서가 되기도 했다.

2007년 이전 하나원을 거쳐 정착한 탈북민 상당수는 하나원 소재지인 경기도 안성을 기준으로 주민등록번호를 부여받아, 뒷자리 7개 숫자의 앞 세 자리가 남성은 '125', 여성은 '225'로 시작했다.

이 때문에 중국 비자 발급이나 입국 과정에서 탈북민으로 식별되거나, 같은 지역번호를 가진 일반 주민까지 탈북민으로 오인되는 문제가 제기됐다.

한국 정부는 2007년부터 하나원 소재지가 아닌 실제 정착 거주지를 기준으로 주민등록번호를 부여하도록 방식을 바꿨다.

이후 2009년에는 과거 하나원 소재지를 기준으로 번호를 부여받은 탈북민도 한 차례 주민등록번호 정정을 신청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

주민등록번호뿐 아니라 탈북민들이 과거 중국 체류 과정에서 사용했던 현지 신분 기록도 신원 확인의 단서가 될 가능성이 있다.

서재평 탈북자동지회 회장은 중국에서 장기간 생활했던 북한이탈주민 가운데 신변 안전을 위해 돈을 주고 다른 사람 명의의 중국 호적이나 신분을 구해 사용한 사례가 있다고 설명했다. 한국에 정착한 뒤 다시 중국에 들어갔다가 과거 중국 신분을 정리하라는 요구를 받은 사례도 알고 있다고 했다.

여기에 지문과 얼굴정보 같은 생체정보도 신원 확인에 활용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북한인권정보센터는 지난해 연구 발표 자료에서 중국에 체류했던 탈북민들의 지문과 얼굴정보 등 생체정보가 수집된 사례를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를 진행한 신동휘 연구원은 BBC에 "기본적으로 수집되는 것은 지문과 얼굴정보이고, 지역에 따라 혈액을 채취하거나 음성을 녹음하는 사례도 있었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이 같은 조치가 북한이탈주민만을 겨냥한 별도 정책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탈북민을 대상으로 한 정책이라기보다는 중국 내 불법체류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정책입니다. 중국이 탈북민을 난민으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탈북민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신 연구원은 특히 과거 중국에서 다른 신분증을 사용하거나 신분정보를 등록한 탈북민이 한국 정착 후 다시 중국에 들어갈 경우 과거 기록과 연결될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BBC는 과거 중국 입국 과정에서 제지된 탈북민 당사자를 직접 인터뷰해 당시 상황을 들었다.

탈북민 이한솔 씨(가명·50대 여성)는 한국 정착 후 여러 차례 중국을 방문했지만, 2018년을 전후해 중국 입국을 시도했다가 세 차례 모두 제지됐다고 말했다. 이전까지는 별다른 문제 없이 중국을 오갔다고 했다.

이한솔 씨가 가장 의문스럽게 여기는 것은 중국 측이 지문을 채취하기도 전에 자신의 신원을 알고 있었다는 점이다.

"입국심사를 받으려고 줄을 서 있었는데 지문을 찍기도 전에 공안 3명이 오더니 저를 따로 불렀어요. 여권을 보더니 '너 탈북민이지'라고 했어요. 저는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반복해서 말했죠."

그는 과거 중국에 체류하면서 중국 신분증을 사용했고, 2009년 중국에서 붙잡힌 경험이 있어 자신의 지문이 현지에 남아 있을 가능성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지문을 찍기도 전에 제지됐기 때문에 중국 측이 어떻게 자신의 과거 신원을 확인했는지는 지금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 측은 이씨가 탈북민이라는 이유로 입국할 수 없다는 취지로 말했지만, 구체적인 입국 제지 사유나 신원을 확인한 방법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한솔 씨는 세 차례 모두 약 24시간 동안 별도 공간에 머물렀고, 귀국행 비행기를 타기 전까지 휴대전화와 여권도 회수됐다고 했다.

결국 그는 중국에 입국하지 못하고 한국으로 돌아왔고, 이후 중국을 다시 방문하지 않았다.

한국 외교부는 중국 내 탈북민의 입국 거부·체포·구금 사례를 별도 신분별 통계로 관리하고 있지는 않다고 밝혔다
사진 설명, 한국 외교부는 중국 내 탈북민의 입국 거부·체포·구금 사례를 별도 신분별 통계로 관리하고 있지는 않다고 밝혔다

무비자 중국, 탈북민들의 우려는 여전

현재 대한민국 일반여권 소지자는 관광·사업·친지 방문·교류·경유 목적으로 중국에 최대 30일 동안 비자 없이 입국할 수 있다.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이 정책은 2026년 12월 31일까지 적용된다.

최근에는 탈북민들 사이에서 중국 여행 자체를 꺼리는 분위기도 나타나고 있다.

앞서 중국 여행 계획을 취소한 정 씨는 중국 당국이 탈북민의 입국 사실이나 신원 정보를 북한 측과 공유할 가능성, 중국에서 납치될 가능성 등을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서재평 탈북자동지회 회장도 "중국 여행은 위험해서 안 가겠다는 사람들이 많다"며 "굳이 위험하다는 곳을 갈 필요가 있느냐고 생각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우려가 제기되는 배경에는 과거 중국을 거쳐 북한으로 돌아간 탈북민을 둘러싼 논란도 있다.

국내 방송에서 활동하던 임지현 씨는 2017년 돌연 중국으로 출국한 뒤 북한 매체에 등장했다. 당시 임 씨가 스스로 북한으로 돌아간 것인지, 중국에서 납치된 것인지를 두고 논란이 일었고 경찰도 재입북 경위를 수사한 바 있다.

최근 탈북민 출신 방송인 한송이 씨는 "임 씨가 조선족 남편으로부터 부모님이 중국에 와 있다는 연락을 받고 중국으로 갔다가 북한 보위부에 납치돼 북한으로 끌려갔다"고 밝히면서, 당시 사건이 다시 주목받았다. 다만 이를 뒷받침할 구체적인 증거나 자료는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았다.

한국 외교부는 '최근 중국에서 실제 몇 명의 한국 국적 탈북민이 입국을 거부당하거나 체포·구금됐는지'를 묻는 BBC의 질의에 "재외국민 사건·사고 통계는 국가와 지역별로 관리하고 있지만 (탈북민과 같은) 특정 신분별 통계는 별도로 관리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또 경찰청 등 유관기관과 재외국민의 안전을 위해 상시 협조하고 있다면서도, 이번 주의 안내와 관련한 구체적인 협의 내용이나 계기는 공개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외교부는 한중 영사협정에 따라 한국 국민이 중국에서 체포·구금될 경우 당사자의 요청 여부와 관계없이 4일 이내 한국 영사기관에 통보하도록 돼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외교부는 '한국 국적을 취득한 탈북민이 중국에서 북한으로 송환되거나 북한 당국에 인도된 사례가 확인된 적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외교부가 파악하고 있는 바로는 한국 국적을 취득한 북한이탈주민이 중국에서 북한으로 송환되거나 북한 당국에 인도된 사례는 없다"고 밝혔다.

BBC는 중국 외교부에도 한국 국적 탈북민에게 다른 한국 여권 소지자와 구별되는 별도의 입국 심사 기준을 적용하는지, 최근 입국 거부·조사·구류 사례가 얼마나 되는지, 사례가 있다면 그 이유가 무엇인지 등에 대해 서면 질의했지만 답변을 받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