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도가 수면 패턴을 좌우한다?

달이 떠있는 밤에 숙면을 취하는 사람을 묘사한 일러스트
    • 기자, 아만다 루게리
    • 기자, BBC 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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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과학자들은 온도가 인간의 일주기 리듬을 조절하는 데 빛만큼이나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인류학자 간디 예티시는 어린 시절 미국 뉴저지주에서 추운 겨울철마다 잠들기 전 하던 습관을 아직도 기억한다. 그는 창문을 열어 밀려들어 오는 차가운 공기로 얼굴을 식히곤 했다. 어머니의 난방비 잔소리를 걱정하면서도, 그는 이 과정에서 금세 졸음을 느끼곤 했다.

예티시의 경험이 타당했음을 보여주는 새로운 증거들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수면의 깊이부터 깬 후의 개운함까지, 온도가 수면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이다. 일부 과학자들은 더 나아가, 언제 잠들지 결정하는 데도 빛 못지않게 온도가 중요한 요소라고 주장한다.

'온도와 수면'에 관해 밝혀진 사실과 아직 해결되지 않은 과제를 정리했다.

태양에서 나오는 온기

오랫동안 예티시는 시원한 수면 환경을 선호하는 것이 개인 취향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비산업 사회 사람들의 수면 패턴을 연구하기 위해 볼리비아 아마존 토착 부족인 치마네족과 함께 지내면서 생각이 달라졌다.

예티시도 수면 환경의 가장 중요한 신호가 '빛 노출'이라는 과학계의 오랜 통념을 갖고 있었다. 그런데 치마네족의 상황은 달랐다. 인공 조명용 전기가 없고 낮 시간을 주로 야외에서 보내는데도, 그들은 보통 해가 진 뒤 수 시간이 지나서야 잠자리에 들었고 해가 뜨기 전에 일어났다.

이후 예티시와 미국 공동 연구진은 다른 두 토착 부족도 조사했다. 탄자니아 북부의 하드자족과 남아프리카의 산족이었다. 연구진은 이들의 수면 시점 역시 빛과 어둠의 주기와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대신 주변 기온의 오르내림과 궤를 같이하고 있었다.

예티시는 "우리는 일몰과 일출이 중요한 이유를 '빛'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며, "하지만 온기 역시 태양에서 온다"고 말했다.

수면을 위한 온도 낮추기

수십 년간 쌓인 연구 결과에 따르면, 수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인간의 심부 체온은 내려간다. 대부분 밤새 체온이 떨어지는데, 밤사이 낮 최고점보다 약 1°C 정도 낮아진 최저점에 도달한다.

베를린 수면의학 센터의 세바스티안 헤르베르거 박사(수면 전문의)는 침실 온도가 높을 때 사람들이 자주 깨고 수면 시간이 줄어드는 이유를 여기서 찾는다. 헤르베르거 박사는 "무더운 호텔 방에서 자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를 쉽게 이해할 것"이라고 말했다.

2007년 진행된 한 연구는 방의 온도 변화가 수면에 미치는 영향을 실험했다. 연구 참가자들은 두 가지 환경에서 수면을 취했다. 첫 번째 환경은 오후 6시부터 오후 10시 사이에 방 온도를 27°C에서 24°C로 낮췄다가, 오전 3시부터 오전 7시 사이에 천천히 27°C로 올렸다. 야간에 주변 기온이 자연스럽게 떨어졌다가 올라가는 현상을 재현한 것이다. 두 번째 환경에서는 온도를 27°C로 계속 유지했다.

실험 결과, 변온 환경에서 잠을 잔 참가자들의 야간 멜라토닌 수치가 온도가 일정했던 방에서 잔 이들보다 높게 나타났다. 멜라토닌은 우리 몸에 휴식을 취하고 수면을 준비하라는 신호를 준다. 몸에서 자연스럽게 생성되며, 잠들 시간이 가까워질수록 늘어났다가 밤중에 정점을 찍는다.

깨어났을 때 개운함도 변온 환경에서 잠을 청한 집단이 더 컸다. 이를 바탕으로 연구진은 인류가 해질 녘과 동틀 녘의 자연스러운 온도 변화에 맞춰 깊은 잠을 자도록 진화했을 것이라 추정했다.

다만 잠들기 위해 기온이 정확히 어느 정도까지 떨어져야 이상적인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 또한 온도가 생체 시계와 수면 시점에 미치는 영향이 얼마나 절대적인지에 대해서도 학계의 연구와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체내 생체 시계 조율

온도와 수면의 연관성을 생각하면 한 가지 의문이 뒤따른다. 온도가 체내 생체 시계 조율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느냐는 것이다. 생체 시계는 24시간 주기로 일어나는 신체·정신·행동의 변화인 "일주기 리듬"을 조정한다. 여기에는 수면과 식사 시점을 포함한 인체의 거의 모든 활동이 포함된다. 오랫동안 일주기 리듬은 주로 빛 노출에 따라 결정된다고 여겨져 왔다.

숙면한 사람과 잠을 잘 자지 못한 사람을 대비하는 일러스트
사진 설명, 침실 온도를 조절하면 잠들기 좋은 환경을 만드는 데 도움이 된다

옥스퍼드 대학교의 일주기 신경과학 교수이자 저서 '라이프 타임'의 저자인 러셀 포스터는 잠들기 전 체온이 떨어지는 주된 이유가 일주기 리듬 때문이라고 말했다.

포스터 교수는 체온이 생체 시계의 영향만을 받는 수동적 결과물은 아니라고 했다. 생체 시계 조율에 기여하는 자극제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온도가 수면 체계에 보내는 신호로서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동물 실험 결과도 온도가 체내 생체 시계 조율에 기여할 수 있다는 가설을 뒷받침한다.

연구에 따르면 초파리부터 낙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생물종의 일주기 리듬은 온도의 주기적 변동만으로도 적응·학습이 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다. 과학자들은 온도 변화를 가상으로 재현하여 인간 세포의 내부 시계 역시 조절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

다만 동물과 세포 연구 결과가 실제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온도가 인간의 생체 시계를 조절하는 핵심 요소인지를 명확히 구분해 내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예컨대 높은 기온 탓에 잠들기 어렵다면, 이는 일주기 리듬과 무관할 수 있다. 그저 몸이 이완하는 데 필요한 생리적 조건이 맞지 않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일부 소규모 연구는 이와 관련된 어떤 메커니즘이 존재할 가능성을 보여준다. 1974년 진행된 한 연구에서는 참가자가 자는 동안 방 온도를 깨어 있을 때보다 약 6°C 낮게 유지했다. 그 결과 참가자의 수면-각성 주기가 약 23분 연장되었다. 연구진은 인간의 일주기 리듬을 제어하는 데 있어 "온도의 효과가 빛의 효과와 매우 유사하다"고 결론지었다.

한편 2007년의 한 연구는 주변 기온을 내렸다가 다시 올리는 변화가 참가자들의 내부 체온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밝혀냈다. 체온이 가장 낮아지는 시점은 현재 일주기 리듬이 어느 단계에 있는지 보여주는 핵심 지표다. 변동하는 기온에 노출된 참가자들은 온도가 일정했던 방에 있던 이들보다 밤사이 최저 체온에 평균 1시간가량 일찍 도달했다. 이는 침실 온도가 일주기 시계를 재설정하는 데 직접 기여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물론 이와 관련해서는 훨씬 더 많은 연구와 검증이 필요하다.

바젤 대학교의 시간생물학자인 크리스티안 카요첸 교수 역시 온도가 일주기 리듬 조절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점에는 동의했다. 하지만 이를 다룬 실험은 아직 극소수에 불과하다. 카요첸 교수는 "생체 시계를 조율한다는 관점에서 온도가 '새로운 빛'의 역할을 한다고 보기엔 아직 이르다"고 말했다.

온도가 수면에 미치는 영향

수면에 미치는 온도의 역할을 분석하기 어려운 이유는 수면 자체가 다차원적인 생리 과정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언제, 얼마나 졸음을 느끼는지는 두 가지 핵심 시스템이 결정한다. 첫 번째인 '수면 항상성'은 깨어 있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졸음을 가중시킨다. 두 번째인 '일주기 리듬'은 언제 졸리고 언제 깨어날지 제어하는 일종의 생체 시계다.

그러나 세 번째 시스템 역시 수면에 큰 영향을 미친다. 바로 '각성 촉진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은 특정 상황이 되면 다른 시스템보다 우선 작동하여 우리를 깨운다. 새벽 3시라도 화재 경보가 울리면 즉시 잠에서 깨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시스템들은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다. 예티시는 치마네족, 산족, 하드자족에서 관찰한 수면 패턴이 이러한 시스템 및 또 다른 시스템을 통해 생겨났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신경과학자이자 캘리포니아 대학교 로스앤젤레스 캠퍼스(UCLA) 수면 연구 센터 소장인 제롬 시겔은 해당 원주민 집단 연구를 이끌었다. 그는 "온도가 빛보다 수면에 더 중요한 요소일 수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러한 시각이 현대인의 건강에 많은 시사점을 준다고 보았다.

예컨대 시겔 소장은 밤낮으로 기온이 일정하게 유지되는 현대적 주거 환경이 오늘날 수면 장애를 유발하는 데 일조했을 것으로 판단한다. 비산업 사회에 비해 산업 사회에서 불면증 호소 비율이 훨씬 높다는 사실도 같은 맥락이다.

연구진이 치마네족과 산족의 불면증 유병률을 조사했을 때, 두 부족에게는 불면증이라는 단어조차 없었다.

시겔 소장은 "현대인은 스스로가 진화해 온 자연환경에서 벗어나 살고 있다"고 말했다.

온도를 활용해 수면의 질을 높이는 최선책을 찾으려면 향후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할 것이다. 다만 당장은 어린 시절 예티시가 했던 것처럼 밤에 창문을 열어 두는 행동이라도 해 볼 만한 가치가 있다.